한국어

“겨자씨”

1925년 12월 치마티 신부를 단장으로 하는 9명의 살레시오 회원들이 일본을 향해 출발하였고, 45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1926년 2월 8일 일본에 도착한다.

살레시오회에 맡겨진 선교 활동 지역 중 가볼리 신부는 미야자키 성당에 취임했다.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본당 신자들의 조직화와 활성화에 힘썼던 치마티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1929년 3월에 주임사제가 된 가볼리 신부는 자신이 지도하고 있던 마리아 처녀회에 빈곤자와 병자들을 찾도록 호소했고, 그들의 제안으로 가정방문이 시작되었다. 그 활동이 후에 수도회의 활동과 정신의 원천이 된다.

 

우리가 토리노를 출발하는 날 아침, 총장님이 우리를 위하여 돈 보스코의 방에서 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미사가 끝나자 총장님은 우리들에게 담담하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송별의 말씀을 해 주셨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일한 수단, 적어도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은 애덕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호소하며 훈계하셨다. … 나는 총장님의 이 말씀을 소중한 보물로 받아 언제까지나 마음에 간직해 두기로 하였다.

(회상록『총장님의 말씀』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병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몸을 녹일 따뜻한 방과 옷, 그리고 배를 채울 만한 음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병자나 빈곤자들을 방문할 때는 말씀과 함께 그들에게 나누어 줄 물건을 가지고 가야 했다. 결국 육체적인 고통을 먼저 해결해 주지 않고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며 섭리해 주시는 하느님의 실존을 믿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던 가난한 노인들이나 병자들이 “나에게 이런 선물을 보내 주시는 하느님이란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감동과 신비에 찬 이와 같은 말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회상록『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다』에서)



처녀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니, 지금부터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굉장한 일을 하나 시작하려고 생각하는데, 그 일을 위해 여러분 한 사람이 일 전씩, 성금을 내 주시기 부탁합니다.” 그리고 22전이 내 손에 쥐어졌다. 회합 인원은 22명이었으니까, 그 중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 넉넉히 성금을 내려 하였으나, 나는 일 전 이상은 받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모두 일 전씩을 받아 22전이 놓여진 손을 그들 앞에 내밀며 “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과 행위로 나의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열렬한 마음으로 말하였다.

(회상록『굳은 신뢰의 행위』에서)